향화교

선사의 옛 정취에서 명원 풍경까지: 향화교, 모란과 법화진

자오펑화원 유적지는 상하이시 창닝구 창닝로 780번지에 있으며, 1914년에 조성되어 현재는 중산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대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공원 중 하나인 중산공원의 경관은 단순히 서양식 정원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법화진 지역에 천 년 동안 축적된 깊은 문화적 맥락을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법화진은 북송 개보 연간에 법화선사가 세워진 뒤 명·청 시기에 상하이 서부의 큰 마을로 발전했습니다. 중산공원과는 얼핏 두 개의 평행한 역사 흐름처럼 보이지만, 1958년 법화진의 하천 매립과 도시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접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향화교가 공원으로 옮겨졌고, 법화 모란도 공원 안으로 이식되었습니다.
향화교는 법화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적 좌표로, 원래 법화선사(현재 법화진로 525번지) 앞에 자리해 이총징을 가로질렀으며, 예부터 향객과 주민들이 오가던 핵심 다리였습니다. 1958년 이 오래된 다리는 통째로 중산공원으로 이전·복원되어, 시장 골목의 일상에서 도시공원으로 들어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 있는 화석이 되었습니다.
향화교는 단경간 평량교로, 위에는 나한 난간판이 있고 끝부분은 보구석으로 마감되어 형태가 소박하고 고풍스럽습니다. 다리 몸체는 석재로 쌓았으며, 세 개의 긴 돌을 이어 깔아 만들고 석주, 돌 난간, 석재 판석, 다리 앞의 석사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리 양쪽 석재 판석의 양면에는 모두 꽃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한 송이와 두 송이의 모란 문양으로 장식되어 강남 수향의 건축적 유전자와 신앙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다리 남쪽 끝 양옆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한 쌍의 석사자가 놓여 있습니다. 머리를 옆으로 돌린 앉은 자세로, 높이는 약 1m, 길이는 50cm, 너비는 40cm이며, 정교한 조각 솜씨로 구슬을 받들고 새끼를 품은 모습, 방울과 늘어진 장식까지 갖추어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과 함께 중산공원 12경 중 하나를 이룹니다.

세상에는 ‘향화교’라 불리는 다리가 적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중산공원의 향화교는 모란 문양을 새겨 법화 모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세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왔습니다.
법화 모란은 상하이만의 지역 문화 명함이며, 법화진에 ‘작은 뤄양’이라는 명성도 안겨 주었습니다. 청나라 건륭·가경 연간에 법화진의 모란 재배는 전성기를 맞아 품종이 60여 종에 이르렀고, 대부분 뤄양에서 전해졌습니다. 총시원의 ‘전춘화서’는 상하이에서 모란 감상 제일의 명소로 꼽혔습니다. 꽃이 피는 때마다 모란은 은쟁반처럼 크고 오색으로 흐드러져,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여행객들이 그 명성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정원 주인은 벗들을 초대해 유상곡수의 아회를 열었고, 한때 그 성황은 전례 없이 대단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총시팔영’ 가운데서도 가장 이름난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법화 모란은 강남 문인들의 미감과 지역 풍속의 바람을 담고 있으며,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도 품고 있습니다. 1958년 도시 재정비 과정에서 법화 모란은 통째로 중산공원으로 옮겨 심어져 향화교와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해마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여전히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전춘화서’의 옛 풍치를 다시 보여 줍니다.
법화진의 문화유산은 근대 공원의 공간 구조 속에 스며들어 상하이에서 유일무이한 ‘공원 속 옛 마을’ 경관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상하이 지역 문화와 서양식 정원 계획 이념이 부딪히고 융합한 살아 있는 사례이자, 현대화 과정에서 도시의 기억을 보호하고 활용한 모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