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펀루

타오펀루라는 이름에 담긴 저우타오펀의 이야기와 정신

화둥정법대학교 창닝 캠퍼스의 타오펀루는 옛 세인트존스대학교 역사 건축군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입니다. 1951년 중국 신문·출판계의 저명한 인물이자 세인트존스대학교 졸업생인 저우타오펀을 기리기 위해 “타오펀루”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타오펀루는 2층 벽돌·목조 구조로,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핵심적인 강의동입니다. 벽면은 주로 청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는 붉은 벽돌로 장식선을 넣었습니다. 서양식 아치형 외랑과 중국식 나비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처마 끝이 위로 들린 “챵지”가 특징입니다. 건물 내부 구조는 사합원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며, 넓은 복도와 반벽 높이의 큰 창이 어우러져 현대적인 교육 공간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합니다.

     타오펀루 사진

저우타오펀의 본명은 저우언룬으로, 중국의 저명한 출판인, 언론인, 정치 평론가였습니다. 그는 1895년 푸젠성 융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을 따라 상하이로 이주했고, 난양공학(교통대학교의 전신) 부속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차례로 다녔습니다. 난양공학은 공학 분야에 강점이 있었지만, 저우타오펀의 관심은 인문학에 있었습니다. 1917년 그는 중요한 선택을 했습니다. 세인트존스대학교 문과로 전학한 것입니다.
1919년, 저우타오펀은 우수한 성적으로 세인트존스대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문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는 영어 비서, 가정교사, 대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1926년에는 『생활』 주간지를 맡아 운영하면서 평생의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쉽고 알기 쉬운 언어로 복잡한 정치·경제 문제를 일반 독자에게 설명했습니다. 또한 “독자 우편함” 코너를 개설해 독자의 편지마다 직접 답장을 보내며 독자들과 깊은 정서적 유대를 쌓았습니다. 이 주간지의 발행 부수는 처음 2,000부에서 항일전쟁 전 15만 부 이상으로 급증해 당시 중국 잡지 발행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타오펀”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타오’는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타오’이고, ‘펀’은 끊임없이 분투한다는 ‘펀’입니다. 제가 이 이름을 택한 것은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날카롭게 드러내지는 않되, 언제나 분투해야 한다는 것을요.” 이 이름은 훗날 그의 정신과 인격을 압축해 보여 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저우타오펀은 중국 신문·출판 사업의 발전을 이끈 혁명적 선구자였으며, 그의 정신과 이상은 여러 세대의 신문·출판인과 언론인에게 계승되고 발전되었습니다. 그를 기리고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판창장과 저우타오펀의 이름을 딴 창장타오펀상은 중국의 우수 언론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